골프시뮬레이터가 바꾼 골프의 문법
스크린골프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오프코스 골퍼 수 증가 추세
15세기, 스코틀랜드 동쪽 해안에서 시작된 골프는 오랫동안 시간과 여유를 가진 이들만의 스포츠였다. 넓은 잔디밭, 긴 라운드 시간, 높은 비용 —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될수록 필드는 더 멀어져가며 입문의 문턱은 낮아지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문턱도 낮아지기 시작했다. 시뮬레이터 기술이 더해진 오프코스 골프 덕분이었다. 한국에서는 이미 익숙한 풍경이지만, 지금은 전 세계로 스크린골프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오프코스 골프란? 전통적인 18홀 필드 골프(온코스 골프)와는 달리 오프코스 골프는 스크린 골프, 골프 연습장, 엔터테인먼트형 골프 등을 이르는 말이다.
골프, 실내로 들어오다
2000년, 같은 해 서로 다른 대륙에서 두 회사가 각자의 방식으로 골프의 문법을 바꾸기 시작했다. 영국 왓퍼드에서 스티브·데이브 졸리프 형제가 설립한 탑골프(Topgolf)는 골프공에 RFID 칩을 심어 드라이빙레인지를 점수 경쟁이 가능한 게임 공간으로 바꿨다.1 같은 해 한국에서 출발한 골프존은 2002년 실내에 18홀 코스 전체를 구현하는 스크린골프 플랫폼을 만들었다. 탑골프가 골프 레인지를 게임과 사교의 공간으로 바꿨다면, 골프존은 실내에 필드에서 플레이하는 듯한 박진감 넘치는 골프를 구현했다. 방향은 달랐지만 두 회사가 골프에 IT와 네트워크 기술을 융합해 많은 사람이 골프와 접할 수 있도록 골프의 문턱을 낮춘 것이다.
특히, 한국에서 그 변화는 지구상 어느 나라 보다도 빠르게 진행됐다. 유원골프재단이 발간한 한국골프산업백서에 따르면 스크린골프 시장의 9년간 연평균 성장률(CAGR)은 8.70%로 필드골프(8.22%)를 웃돌았다.2 골프존 기준 2019년 국내 라운드 수는 이미 6,000만 회에 달했다.3
코로나 팬데믹이 열어젖힌 문
전세계적인 스크린골프 트랜드의 확대에 코로나 팬데믹이 가속 페달을 밟았다. NGF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미국의 시뮬레이터 이용자는 620만 명으로 팬데믹 이전 대비 73% 증가했다.4 팬데믹 이후 한국처럼 수요가 조정된 시장도 있지만, 미국에서는 시뮬레이터 이용자 수가 높은 기준선을 유지하며 새로운 골프 소비 방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2025년 기준 미국 골프 참여 인구는 4,810만 명으로 2019년 대비 41% 증가했다.5 세계 골프 규칙을 제정하는 기관인 R&A에 따르면 R&A 관할 148개국의 전체 골프 참여 인구는 1억800만 명으로, 이 중 전통적인 9홀·18홀 온코스 플레이어는 40.1%에 불과하다. 나머지 59.9%는 드라이빙레인지, 시뮬레이터, 어드벤처 골프 같은 비전통 방식으로 골프를 즐겼다고 응답했다.6
글로벌 온코스 vs 오프코스 골퍼 현황
오프코스는 온코스 골프의 마중물이다
오프코스 확산을 두고 필드 골프의 위기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데이터는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USGA에 따르면 2025년 미국에서 등록된 골프 스코어는 8,200만 개 이상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9홀 라운드 비중은 5년 연속 증가세다.7 Golf Australia도 2024/25 시즌 오프코스 경험이 온코스 참여를 계속 견인하고 있다고 평가했다.8
골프의 본고장 영국·스코틀랜드에서도 스크린골프의 확산세가 이어지고 있다. BBC Sport는 2026년 3월 기사에서 영국·아일랜드 온코스 골퍼의 82%가 다른 형태의 골프를 경험했다고 전했다.9 R&A 최고경영자 마크 다번은 “비전통 골프의 성장이 전 세계 성인과 주니어의 참여를 이끌고 있으며,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골프가 골프의 중요한 입문 경로가 되고 있다”고 밝혔다.9
한국은 이 흐름을 가장 먼저 경험한 시장이다. 스크린골프가 필드골프 이용 인구를 넘어선 것이 이미 10년 전 일이고, 그 기술과 운영 노하우가 지금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전 세계로 수출되고 있다.
국내 스크린골프 · 필드골프 시장 규모 추이
한국골프산업백서가 집계한 연도별 수치는 스크린골프의 독자적인 성장력을 보여준다. 스크린골프 시장은 2015년 1조200억원에서 2023년 2조3,590억원으로 8년간 131% 성장했다. 특히 2016년 김영란법 시행으로 필드골프 시장이 위축됐던 시기에도 스크린골프는 꾸준히 성장하며 저변을 넓혔다. 장기적으로 두 시장 모두 우상향하는 흐름이 확인된다.10
입문의 경로가 바뀌었다
R&A 조사에 따르면 캐나다 온코스 골퍼의 37%, 잉글랜드 온코스 골퍼의 36%가 처음 필드에 나가기 전 시뮬레이터나 드라이빙레인지 같은 실내·비전통 방식으로 골프를 먼저 접했다.11 NGF 역시 미국에서 필드 골프에 새로 입문한 골퍼의 약 3분의 2가 오프코스 경험을 거쳐 들어온다고 밝혔다.12
주니어와 여성 층에서 이 흐름은 뚜렷하다. R&A에 따르면 6~17세 주니어 골퍼의 약 80%가 비전통 포맷만 경험한 상태다.13 R&A의 9개 핵심 시장에서 온코스 성인 여성 비중은 25%지만, 비전통 포맷에서는 50%로 올라간다.14 오프코스가 기존 골프 소비층과는 다른 새로운 인구를 끌어들이고 있다는 의미다.
포맷의 진화, 시장의 성장
참여 인구 저변이 넓어지면서 골프 산업의 규모와 질도 함께 올라가고 있다. 시뮬레이터 기술의 고도화는 장비 시장을 자극했고, 실내 레슨 시장도 빠르게 팽창했다. 정교한 데이터 기반의 스윙 분석은 레슨의 질을 높였고, 아마추어뿐 아니라 프로 선수들도 시뮬레이터를 훈련 도구로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트랙맨(Trackman)이 대표적인 사례다. 2003년 덴마크에서 창업한 트랙맨은 군사용 도플러 레이더 기술을 골프에 접목해 볼 탄도를 정밀 분석하는 런치 모니터를 개발했고, 이후 가상 코스 시뮬레이터로 영역을 확장해 일반 골퍼들에게도 문을 열었다. 창업자 클라우스 엘드럽 요르겐센 CEO는 ‘창업 당시 시뮬레이터가 비즈니스의 핵심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고 말했다.18
새로운 포맷은 새로운 시장만 만든 게 아니다. 선수들에게도 새로운 도전의 무대가 열렸다. 2012년 출범한 GTOUR·WGTOUR는 골프존이 세계 최초로 만든 스크린골프 프로투어로, 스크린골프를 단순한 연습 공간을 넘어 경쟁과 관람의 영역으로 확장시켰다. GTOUR 역대 최다승 16승의 스크린의 황제, 김홍택 프로는 2017년 KPGA대회 첫 우승 이후, 2024년 매경오픈을 7년 만에 제패하며 필드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2025년 KPGA 부산오픈까지 통산 3승을 달성한 그는 스크린과 필드를 넘나드는 이도류의 상징이 됐고,15 WGTOUR 상금왕 홍현지 프로는 KLPGA 풀시드를 보유하며 필드 톱10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GTOUR·WGTOUR 메이저 우승자에게 각각 KPGA·KLPGA 본선 진출권이 주어지는 구조는 스크린이 필드의 공식 등용문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16
포맷 혁신도 이어지고 있다. 2025년 1월 출범한 TGL은 PGA 투어 선수들이 시뮬레이터와 실제 그린을 결합한 공간에서 팀 대항전을 펼치는 리그로, 빠르고 속도감 있는 진행을 원하는 미국 스포츠 팬들을 위해 골프를 2시간짜리 미디어용 콘텐츠로 재설계했다.17 한편, 항상 리얼함을 중시해온 골프존은 2024년 스크린과 실제 그린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플랫폼 시티골프(CITYGOLF)를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 2022년 시작된 골프존 차이나오픈은 2024년부터 시티골프 무대로 격을 높이며 본격적인 글로벌 투어로 발돋움했고, 2026년에는 총상금 약 42억5천만원으로 아시아·미주·유럽 선수들이 참여하는 세계적 대회로 성장했다.19
골프의 새로운 출발선
오프코스 골프의 미래는 밝다. BBC Sport가 보도한 Trackman의 전망에 따르면 2028년까지 영국 내 실내 골프 라운드 수가 야외 라운드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된다. 한국에서는 이미 10년 전에 현실이 된 일이다. 그리고 그 변화를 주도했던 기술과 플랫폼이 지금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19
입문 장벽은 낮아지고, 참여 인구는 늘고, 시장은 커진다. 시공간의 제약이 사라지면서 골프는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다양한 방식으로 열리고 있다. 스크린에서 시작해 필드로 나가고, 필드에서 쌓은 실력을 다시 스크린에서 겨루는 순환이 골프 생태계를 확장시키고 있다.
15세기 스코틀랜드 해안에서 시작된 골프가 5세기 만에 필드 밖으로 나왔다. 그 전환의 한가운데에 한국 골프 산업이 서 있다. 따라서 오프코스는 골프의 종착지가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골프와 만나는 새로운 출발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출처
- Wikipedia, Topgolf. 2000년 영국 왓퍼드 창립, RFID 칩 기반 게임화. https://en.wikipedia.org/wiki/Topgolf
- 유원골프재단, 한국골프산업백서 2022, 200p. 9년간 연평균 성장률(CAGR) 스크린골프 8.70%, 필드골프 8.22%.
- 골프존 내부 라운드 데이터. 2019년 6,000만 라운드.
- National Golf Foundation (NGF), Simulator Golf Sees Real Surge, 2023. https://www.ngf.org/short-game/simulator-golf-sees-real-surge/
- National Golf Foundation (NGF), Golf’s Growth Era – The Road to 50 Million Golfers. https://www.ngf.org/short-game/golfs-growth-era-the-road-to-50-million-golfers/
- The R&A, Over 100 million golfers in R&A markets, 2024. https://www.randa.org/en/articles/over-100-million-golfers-in-randa-markets-as-global-participation-continues-to-grow
- USGA, Golf Participation Boomed in 2025, 2026.01. https://www.usga.org/content/usga/home-page/articles/2026/01/golf-boomed-2025-more-than-82-million-rounds-posted.html
- Golf Australia, 2024/25 Golf Club Participation Report. https://static.golf.com.au/clubs/1000/uploads/resources/2025%20golf%20club%20participation%20report.pdf
- BBC Sport, The indoor evolution threatening to outstrip outdoor golf, 2026.03.21. R&A Mark Darbon 발언, 영국·아일랜드 82%, 잉글랜드 36% 데이터 포함. https://sports.yahoo.com/articles/indoor-evolution-threatening-outstrip-outdoor-070546965.html
- 유원골프재단 발간, 한국골프산업백서 2016·2018·2020·2022·2024. 연구: 서울대학교 스포츠산업연구센터 강준호 교수 연구팀. 스크린골프·필드골프 본원시장 시계열 데이터.
- The R&A, Global Golf Participation Report 2024. 캐나다 37%, 잉글랜드 36% 실내·비전통 방식 선경험 데이터. https://assets.randa.org/c42c7bf4-dca7-00ea-4f2e-373223f80f76/53c40191-17dc-4a7b-8767-b9f582d6607c/The%20R%26A%20Global%20Golf%20Participation%202024.pdf
- National Golf Foundation (NGF), Golf’s Growth Era. 신규 필드 골퍼의 약 2/3가 오프코스 경험 후 입문. https://www.ngf.org/short-game/golfs-growth-era-the-road-to-50-million-golfers/
- The R&A, Annual Review 2025. 6~17세 주니어의 약 80%가 비전통 포맷만 경험. https://assets.randa.org/c42c7bf4-dca7-00ea-4f2e-373223f80f76/9008c66c-8ce9-4f2f-bd41-ed3a6b2cef8f/Annual%20Review%202025.pdf
- The R&A, Global Golf Participation Report 2024. 온코스 성인 여성 비중 25% vs 비전통 포맷 50%.
- 굿모닝경제, 골프존 KPGA·KLPGA 스타 맞대결, 2026.04. 김홍택 2024 매경오픈·2025 KPGA 부산오픈 우승. https://www.goodkyung.com/news/articleView.html?idxno=285603
- 네이트뉴스, 2025 WGTOUR·GTOUR 3차 결선 결과, 2025.03. https://news.nate.com/view/20250317n09020
- TGL Golf, TGL Explained. https://tglgolf.com/explained
- Business Wire, Trackman Introduces Trackman iO, 2023.09. 창업자 Klaus Eldrup-Jørgensen 발언. https://www.businesswire.com/news/home/20230919682677/en/Indoor-Golf-Elevated-Trackman-Introduces-Trackman-iO-Its-First-Launch-Monitor-Designed-Specifically-for-the-Indoor-Game
- 한국경제, 2026 골프존 차이나오픈 돌입, 2026.03. / 골프앤갤러리, 2024 골프존 시티골프 차이나 오픈 결과, 2024.09.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6031917171
- BBC Sport, The indoor evolution threatening to outstrip outdoor golf, 2026.03.21. Trackman 2028년 영국 내 실내 라운드 야외 초과 전망. https://sports.yahoo.com/articles/indoor-evolution-threatening-outstrip-outdoor-070546965.html